세례를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 신부님과 약속이 되어있는 찰고는
안 갈 수가 없어서
신부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
중 신부님이,
세례를 받는 다는 건 완전히 하느님의 양이
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
하느님의 양이 되는 과정을
비로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.
지금까지의 예비자 교리는
우리에게 새 신을 만들어주는 과정이었고
이제 세례를 통해(새 신을
신고) 새로운 과정을 시작해 나가는 것이다.
비록 아무리 좋은
신발이라고 한 들, "새 신"이라서 발이 아프고 불편하겠지만,
이
경우, 새 신을 신음으로서만 새로운 길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.
신부님의 왕방울만한 눈동자를 쳐다보면서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까? 라는
질문에
"예"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.
내 세례명은 (이집트로 팔려간) 요셉,
그의 고난과 인생
여정을 통해서 인생을 배우고 싶고
또한 내가 좋아하는 신화학자
조셉(Joseph) 캠벨의 이름이기도 해서 이전부터 점 찍었던 세례명이다.
PS 오늘 대부님을 처음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, 예비자
교리반을 진행했던 보좌신부님이
알고보니 북경대 박사를 하고
나서야 신학교에 입학하신 분이라고 한다.
흰머리 많은,
사람좋아보이는 신부님이 38살에서야 신학교에 입학하셨다는 말씀을 하실 때
남들보다 너무 늦게 시작하셔서 나름 속상한 일들도 겪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
들었는데...
재물이
있어서 비로서 위대해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,
재물이 없어서 위대해진 사람들도 있다.
성직자는 나눔으로 인해서 커진 분들이 아닐까...








